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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전


향후 인류가 어떤 역사를 써 내려갈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막연히 예측할 따름이다. 현재는 적잖은 돈을 수중에 가능케 하는 직업들 중 일부가 미래에는 사라질 거라는 뉴스를 종종 접한다. 당장 눈앞의 일도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내가 택한 직업이 앞으로 탄탄대로를 걸었으면 싶다. 많은 부분 기기가 대체하지만 그렇지 아니 한 분야도 존재한다. 오로지 인간만이 행할 수 있는 몇몇 일들 중 하나가 손을 사용하는 것이다. 취미 삼아 목공 일을 배우는 이들과 진지하게 미래를 고민하며 한옥 짓는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부디 그들의 선택이 옳길 기도한다. 이미 미국 등의 국가에서는 목수 등이 높은 가치를 인정 받고 있다 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아니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아래 사람 있다. 평등한 사회에서 이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사실이다. IMF로 한 차례 휘청인 한국 사회는 그전까진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신분을 쏟아대기 시작했다. 한 번 몸 담으면 평생 다니는 게 당연했던 직장이 짧게는 몇 개월 길어도 2-3년이라는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만 일할 수 있는 곳으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동일한 일을 함에도 임금은 정규직의 60% 혹은 그 이하. 최소한의 생계 유지도 버거운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왕이면 정규직을 부르짖으며 취업을 미루고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리는 젊은이들을 향해 사회는 눈을 낮출 것을 주문했다. 그러는 당신은 퍽퍽한 삶을 감내할 수 있느냐며 삿대질을 하고픈 마음을 몇 차례나 참았던지 모른다. 연장傳. 이른바 화이트 칼라 직종을 모두가 선호하는 시대지만 그렇다 하여 사무직 종사자들만 넘쳐나는 사회가 바람직하진 않다. 연장 든 손으로 구슬땀 흘리며 일하는 이들의 묵묵함이야말로 이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다. 저자들이 만난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노동을 하고 있었다. 인간 노동의 가치를 측정한다는 발상 자체가 어찌 보면 오만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의 노동은 제대로 된 값어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충분히 숙련되지 못해서? 아니다. 15년 20년 혹은 그 이상 한 분야에 몸담은 이들에게 미숙을 논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혹자는 오늘날 지하철이나 열차 사고 등이 왜 그리도 잦은지를 물을지도 모르겠다. 효율성을 이유로 모든 분야에서 정규직 줄이기에 힘을 쏟았다. 이에 반한 움직임에는 가차 없이 대응했다. 그런 후에 비정규직, 파견 노동자들에게 일을 맡겼다. 책임감이 부족해서? 이 말도 맞다. 언제 옷을 벗게 될지 모르는 이들이 자기계발을 위해 애쓸 리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현장의 노동 강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했다. 게다가 임금이 어찌나 짠지 모른다. 사고는 시민에게 불편함을 초래했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노동자의 삶도 앗아갔다. 스크린 도어를 고치다가 사망한 10대 노동자의 가방에선 미처 먹지 못한 식사를 대신할 컵라면이 하나 나왔다. 어느 누가 피지 못한 이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서럽게 이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전부다. 희망도 보였다. 몇몇 사례들은 노동조합이 있어 가능했던 일들을 보여주었다. 노동조합이 있었기에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이 아닌 고용을 보장 받는 무기계약직, 정규직이 될 수 있었다. 그 전까지 주어지지 않던 휴게 시간이나 명절 수당 등이 주어진 것도 노동조합 덕분이었다. 가진 건 ‘쪽수’가 전부이므로 뭉쳐야 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오로지 순응하는 근로자로부터 깨어나 제 권리를 스스로 찾는 노동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인간다운 삶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었다. 몇 해 전부턴가 신문 기사 등을 통해 성수동 수제화 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도 접했다. 급부상한 성수동을 보며 지역 경제 활성화를 고민하곤 했는데,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람이 몰린다 하여 그 곳에서 일하는 이들의 임금이 오르진 않는다. 아르바이트생보다도 못한 보수를 받으며 하루 종일 가죽을 만지는 장인의 닳아 없어진 지문은 누구도 알아주질 않고 있었다. 언제 즈음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치를 배반하는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나보다 좋은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보다 적은 돈을 벌며 고된 노동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혹자는 타인을 모질게 대한다. 그게 그 사람의 몹쓸 인격이요, 그가 빼어든 날카로운 비수가 언젠가는 제 자신의 가슴을 파고 들 거란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엔 넘친다.
스물네 개의 연장,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의 연장전

노동운동가 박점규와 사진가 노순택이 스물네 개의 직업을 가진 노동자들을 만나 이 땅의 노동 현실을 기록한 연장전 이 출간되었다. 노동자의 ‘연장’을 중심으로 우리 시대 노동의 풍경을 가감 없이 그려냈다.

노동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연장을 갖고 있다. 연장에는 노동하는 사람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수십 년 망치를 손에 들고 집을 지어온 목수, 현란한 솜씨로 다양한 칼을 써서 생선회를 치는 일식요리사, 호스피스 병원에서 환자들의 통증을 줄여주기 위해 주사기를 드는 간호사. 노동운동가 박점규와 사진가 노순택은 노동에 대한 기획을 시작하면서 바로 그 ‘연장’을 떠올렸다. 박점규는 밥벌이 수단이자 노동자의 분신인 연장에 주목해 직업의 명암과 노동의 소중함을 이야기 하고자 이 기획을 시작했다. 그는 통계청 직업분류표에서 스물네 개의 직업을 고르고, 스물네 곳의 현장에 찾아가 노동자들의 진짜 목소리를 기록했다.

노순택은 연장이 작동하는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해 노동의 풍경을 담아냈다. 미용사가 몇 번의 가위질로 스타일을 창조해내는 순간, 대형 선박에서 완벽한 용접을 해내는 베테랑 용접사의 모습. 그러나 연장전 의 연장들이 직업적 특성이나 숙련된 기술만 선보이는 건 아니다. 고용의 차별이 안전의 차별, 생명의 차별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연장전 은 스물네 개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연장전傳’이자 여전히 현장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연장전戰’이기도 하다.


6 들어가며 Ⅰ 고뇌와 경이의 연장을 앞에 두고

11 들어가며 Ⅱ 이런 시대의 노동자

18 근심을 자르고 마음을 매만지는 가위
미용사 태기봉 씨
28 허물어진 터를 메우고 파헤친 땅을 다독이는 굴삭기
굴삭기 기사 강정애 씨
40 기계톱이 움직이면 나무가 살아난다
조경사 문쌍용·김상익 씨
52 흥을 깨우고 꿈을 흔드는 기타
노래 노동자 정윤경 씨
64 갑질을 쓸고 설움을 닦아내는 대걸레
청소 노동자 윤화자 씨
74 불안한 일터에서 드라이버는 안전을 조인다
정비사 유성권·심현진 씨
86 1500도 쇳물을 담아 꽃을 피워내는 래들
주물공 이영원 씨
98 사람과 사람을 접속하는 랜툴
인터넷 설치기사 이영한 씨
110 그의 망치는 공간과 시간을 이어 세상을 짓는다
형틀목수 고원길 씨
122 머릿속 법전으로 송곳들을 위한 울타리를 치다
공인노무사 문상흠 씨
134 반창고 붙인 손이 마음을 토닥이다
어린이집 교사 천순영·김정 씨
146 두려움을 감싸주는 슈트, 도전을 응원하다
수영강사 송진효 씨
158 위로와 격려의 크기를 가늠하는 연필
손해사정사 김현수·홍성영·장준명 씨
168 정情을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의 고달픈 질주
집배원 권삼현 씨
180 끊어진 꿈을 땜질하는 용접기
용접사 차홍조·양병효 씨
192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내일을 향하는 운전대
화물기사 황연호 씨
204 재봉틀은 40년째 잘도 돈다
재봉사 강명자 씨
214 위안을 건네고 마음을 전하는 주사기
간호사 정자영 씨
226 카메라는 말 없이 진술한다
사진가 정택용 씨
238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서 최고급 요리를 만드는 칼
요리사 고진수 씨
250 칼판 위에서 솜씨가 빛나고 멋이 탄생한다
제화공 홍노영·이종훈 씨
262 보통 그 이상을 꿈꾸는 타블렛
만화가 김보통 씨
274 존중과 배려를 건네고 싶은 헤드셋
콜센터 상담사 지윤재 씨
286 확성기는 억압당한 자들의 나팔이 된다
인권운동가 명숙 씨